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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밥의 유래 By 관리자 / 2018-06-29 AM 11:21 / 조회 : 1704회

콩밥의 유래

쌀에 약간의 콩을 넣어 콩밥을 해 먹으면 단백가가 높아지면서 밥의 영양가가 훨씬 좋아진다. 쌀에는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부족하고 콩에는 라이신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아래 표에 나타낸 것처럼 쌀의 단백질 영양가(단백가)는 72이고, 콩의 단백가는 73이지만 쌀 100에 콩 5g만 섞어 먹어도 단백가는 95로 향상된다. 한창 성장기의 어린이에게 콩밥을 먹이면 영양적으로 우수한 식단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 콩밥을 어린아이들이 꽤 싫어한다.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콩밥 먹이기를 망설이는 바가 있는데 이는 교도소에서 콩밥을 먹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도 같다.
왜 교도소에서 콩밥을 먹였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오래전부터 의문이었다. 이러저러한 문헌을 뒤적여 봐도 정확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여러 가설 중에서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하는 설과 재소자들의 건강을 위한 배려차였다는 두 설이 팽팽하다.
일제 강점기에 쌀이 귀했다. 일제는 한반도에서 쌀을 수탈해 가고 우리민족에게는 싸구려 농산물을 먹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만주에서 생산되는 값싼 콩을 대량으로 들여와서 쌀 대용식으로 사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형무소의 죄수들에게는 약간의 곡식과 콩을 섞은 콩밥을 만들어 먹인 것(보리 80%, 콩 20%)이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설이 타당성 있게 보이는 이유는 지금도 홋카이도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을 참관하면 콩밥을 먹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재소자의 건강을 위하여 일부러 콩밥을 먹였다는 설이다. 이 설은 사실은 신빙성이 낮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재소자들의 식탁을 보면 이 설의 허구가 금방 밝혀지기 때문이다. 6.25 전쟁 후인 1957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재소자의 밥상에 대한 규칙이 제정되었다. 이 최초의 문서화된 밥상규칙에서는 백미 30%, 보리 50%, 콩 20%의 혼합 비율이 제정되었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콩이 재소자의 주요 식량원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1986년 이후부터 이 혼합비율에서 콩이 사라지게 된다. 즉 1986년에는 백미 50%, 보리 50%의 비율이었고 1989년에는 백미 60%, 보리 40%, 1994년에는 백미 70%, 보리 30%였으며 1995년에는 백미 80%, 보리 20%로 백미의 비중이 올라갔고 2000년대에는 쌀과 보리의 혼합률이 9 : 1까지 상향조정되어 왔다. 2014년 정부 방침은 재소자의 식탁을 백미 100%로 바꾼다고 한다. 물론 재소자의 건강을 위한 배려차는 아닐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콩값과 쌀값의 차이 때문이고 쌀이 남아도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보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콩밥을 먹는다??고 하면 죄를 짓고 감옥에 수감된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지만 그 말이 사실이지 않은 적이 거진 삼십년이 가까워 온다. 교도소에서 더 이상 콩밥은 없다.

그러면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 왜 두부를 먹이는 걸까? 소설가 박완서씨의 해석에 따르면.. “징역살이를 속된 말로 ‘콩밥 먹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출옥한 이에게 두부를 먹이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두부는 콩으로부터 풀려난 상태이나 다시 콩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두부는 다시는 옥살이하지 말란 당부나 염원쯤 되지 않을까”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콩과 두부는 재소자의 애환과 관련이 있는 식품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재소자에게 콩밥을 먹였겠지만 콩이 자유를 빼앗긴 불쌍한 사람들에게 양질의 영양원이 되어 영양실조를 막는데 크게 기여하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현재는 감옥에서 더 이상 콩밥이 없다고 하지만 쌀에 콩을 약간 섞어 먹는 혼식정책이야말로 재소자들의 건강을 배려하는 좋은 시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표. 쌀 100g에 콩 5g을 섞어 먹었을 때의 단백질 영양 증진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