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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By 관리자 / 2018-07-04 PM 08:34 / 조회 : 2499회

두부

-두부의 제조 기원

두부의 제조 기원에 대하여도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최근까지도 두부는 한나라 시대의 회남(淮南) 왕자 유안(劉安, BC 179-122)에 의하여 처음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었다. 이것의 근거는 송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팔공산두부(八公山豆腐) 전설에 기인한다. 그 내용은 유안은 도가(道家)에 심취한 도인(道人)으로 오랫동안의 수행 끝에 지쳐있었는데 산을 오르다 8명의 신선을 만나게 되고 이들에게 불노장생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으니 두부를 먹으라 하고 콩을 갈아서 두유를 만들고 응고시켜 두부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 와서 Yuan Han-Chhing이 회남자(淮南子)를 철저히 읽고 분석한 결과 이 책에는 두부 또는 두부를 뜻하는 옛글인 여기(黎祁)나 래기(來其)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더 나아기 송대 이전의 문헌에서 두부가 당대(唐代,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 11세기말에 저술된 본초연의(本草衍義)에서라고 밝히고 두부는 당나라 시절에는 없었고 11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송대(宋代, 960-1279)에 널리 사용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양만리(楊萬里, 1127-1206)의 성제집(誠齊集)에 두로자유전-두부(豆盧子柔傳-豆腐)라는 글이 있다. 여기에서 두부의 옛 고향이 하남(Honan) 동북방의 외황(外黃)이라고 한 것과 그 조직감이 유제품과 유사하다고 한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장지현(1993)은 한반도에서 처음 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BC 57-AD 668) 말 또는 통일신라시대(668-918) 초기라고 결론지었다.세종실록(世宗實錄) 권 66 갑인(甲寅) 16년(1434) 기록을 보면 중국 황제의 친서 내용 중에 조선에서 중국 황실로 보낸 부녀자들이 음식을 규모있게 잘 만들고 특히 두부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므로 이들을 더 보내달라는 구절이 있다 여러 문헌들에서 보면, 중국과 한반도에서의 두부제조 기술 발전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며 오히려 콩의 발상지이며 콩을 식품으로 사용한 시기가 앞서 있고 락(酪), 요구르트, 치이즈 등 유목민의 식생활에 익숙했던 남만주와 한반도의 동이족에 의하여 두부가 처음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크다.콩을 주식으로 사용하여온 동이족이 두부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분명 한대(漢代) 이전의 일로 생각 되며 한대에 그 기술이 중국으로 전래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추론은 1980년대에 알려진 한대의 무덤 마왕퇴(馬王堆, 호남성에 있는 기원전 168년의 고분)에 있는 벽화에서 두부제조 공정으로 보이는 그림이 발견됨으로서 한대 초기에 두부 제조 기술이 중국에 알려져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 것에 근거한다. 그림 7은 마왕퇴 벽화 사본과 그 중 두부 만드는 공정을 확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팔공산 두부 전설은 아마도 회남왕 유안이 북방민족으로부터 이 기술을 배워온 사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일 수 있다.못하고 주로 불도가(佛道家)의 소식(素食) 재료로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마도 콩을 북방 오랑캐들이 먹는 열등한 음식재료로 보았던 중국인들의 의식 때문이라고 본다.

-두부의 식용기원

(1) 문헌상에서 본 식용기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두부(豆腐) 제조 기원과 관련하여, 중국 본초학(本草學) 분야에서 한결같이 거론되고 있는 기록이 『豆腐之法 始於漢淮南王 劉安』으로 기원전 150년 전후 한(漢)나라 회남왕 (淮南王) 유안(劉安)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는 원(元) 대의 일용본초(日用本草) 에서 근거한다 本草綱目 卷 25 穀部 造釀類 豆腐條.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이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본초학(本草學)에 뜻을 두었던 이만영(李晩永)의 재물보(才物譜)에서『豆腐 漢淮南王 安 始作豆腐 』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才物譜 卷之 6物 1 飮食 豆腐. 우리나라의 두부 전래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당(唐)나라쯤으로 올라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문헌에 처음 보이는 때가 고려 말기이고, 중국과 가장 교류가 많던 고려 말기에 원(元)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음은 고서를 중심으로, 식용 기원시대를 추정하여 본 것이다. (2) 호칭(呼稱)면에서 본 식용기원 ① 중국의 두부 호칭 중국에서 두부의 호칭변화는 다음으로추정된다. 두부(豆腐)란 공통 호칭 외에도 또 다른 호칭이 있다는 사실을 이만영(李晩永)의 재물보(才物譜) (1798)에서 최초로 밝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豆腐(漢淮南王劉安 始作豆腐) 黎祈(仝)』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두부란명칭 외에 려기(黎祈)란 또 다른호칭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우리 나라에서 려기(黎祈)란 호칭이 처음으로 소개된 사례이다. ② 우리나라의 두부 호칭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과 달리 두부가 유입된 이후 호칭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泡(포)란 속명과 함께 전해지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조 전기에 걸쳐서 두부의 동속명(東俗名)으로 泡(포)가 자리잡은 후 두부 종류 또는 두부 조제용 대두품종에까지 泡(포)를 포함한 낱말이 형성되었다. 다음을 泡太(포태), 太泡(태포) 등 문헌에 기초한 우리나라의 두부 호칭을 살펴본 것이다. ③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호칭변화로부터 식용기원의 추정 우리나라는 두부의 유입 시초부터 두부로 호칭되어 왔다고 보아야 함으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시기도 자연 두부 호칭이 정립되고 있었던 시기에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에서는 한대에 창시되었다는 두부가 중국 漢代의 호칭인 숙유(菽乳) 및 자아순(自雅馴)를 거쳐, 당(唐) 대에서 두부가 공용 호칭으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에 유입 된 그 시기는 당대 (唐代)가 될 것이고 문헌상의 식용기원에서 추정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시기는 삼국시대 (三國時代) 말기 또는 통일신라(統一 新羅) 초기에 두부가 유입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고고학적 측면에서 본 식용 기원 우리나라의 두부 식용기원과 관련하여문헌적인 측면과 호칭적인 측면에서 추정한 결과를 고고학적인 측면을 적용하기 위하여, 두부의 제조기술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맷돌의 발전과정을 살펴 기술적인 측면에서 검증해 보자. 현재까지 밝혀지고 있는 제분용품(製粉用品) 일종인 원시형 돌맷돌이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것은 주로 신석기시대 중기로부터 후기에 걸쳐서이다. 예로 황해도 및 서울권에서의 출토를 들 수 있다. 그 후 돌 맷돌은 금해문화(金海文化, A.D. 0~250) 代 까지 계속 활용되어 왔던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이 돌맷돌은 신석기시대 이래 원삼국까지 제분용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낙랑시대 (樂浪時代, B.C. 108~A.D. 313)로 내려와서 비로소 위돌과 아랫돌이 중쇠를 통하여 갈아지는 맷돌로 발전되었다. 이로써, 오늘날의 맷돌로 이어지는 상한시기(上限時期)는 삼국시대 초기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삼국시대(1~3세기) 초기에는 이미 두유를 만들 수 있는 기술상의 어려움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 초기에 두유를 만들 수 있는 맷돌이 활용되고 있었다면, 두부 또한 삼국시대 초기부터 만들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두부 문화의 시조가 중국이고, 중국에서 조차도 초기 발생 이후 국민 생활에 까지 많이 전파되고 있지 않은 채 절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삼국시대 초기에 쉽게 유입되고 전파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문헌적인 측면과 두부 호칭의 측면에서 추정한 시기, 즉 삼국시대(三國時代) 말기에서 통일신라(統一新羅) 초기 사이에는 두부문화 유입과 함께 삼국시대(三國時代) 초기에 이미 마련되고 있었던 맷돌문화가 쉽게 접목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삼국시대(三國時代) 말기에는 우리나라 전래음식물 들이 중국에 근접 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기초 음식군 형성 또한 현대에 근접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두부문화 또한 쉽게 애용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우리 나라에서의 두부 식용 기원을 삼국시대 말기에서 통일신라 초기로 보는 것이 매우 합당할 가능성이 있다.

-두부의 일본 전래 역사 

가장 이른 기록은 1183년에 Nakatsomi Sukeshige(神主中臣祐重)가 쓴 궁중일기에 당부(唐腐)를 궁중요리에 사용한 것이다. 그 후 14세기에 와서 두부에 대한 기록이 많아지는데 Shinoda는 1338년 부터 1534년 사이에 쓰여지 두부에 관한 기록 12가지를 발굴하여 발표하였다. 일본에서는 두부를 당부(唐腐), 당포(唐布), 모립(毛立) 또는 백벽(白壁)이라 호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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