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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토기의 쓰임새와 제작기술 분석 By 관리자 / 2018-07-04 PM 07:50 / 조회 : 1767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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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토기의 쓰임새와 제작기술 분석토기는 먹을거리를 담는다는 그 본래의 기능 외에도 토기가 만들어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보를 주게되므로 고고학상 매우 중요한 유물로 다루어지고 있다. 토기의 기능과 중요성은 음식문화의 발달과 병행하며 증가되었고 특히 화식과 조리, 가공방법이 복잡해지는데 따라 그 비중도 커졌을 것이다. 이가운데 화식은 위에서 보듯이 토기없이도 가능하며 저장작업도 바구니 등에 넣어 움구덩에 묻는다면 토기가 필요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토기의 기능은 음식을 쪄먹거나, 술을 만들거나 젓갈 및 장류 등을 발효시키는 과정, 그리고 발효식품의 저장 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신석기, 청동기 등 선사시대의 토기들은 대개 겉보기에 푸석푸석하고 다공질(多孔質)이어서 음식을 쪄먹거나 하기에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저장과 발효에 앞서, 한국 고고학에서는 이들 다공질 토기에 액체를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부터 제기되었다. 그때까지는 선사시대 토기의 흡수율은 대개 20% 정도여서 액체를 담기에 부적합하며 낟알 등의 마른 곡식을 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토기를 불에 올려 화식기로 쓰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의문에 답하려면, 즉 토기의 기능과 쓰임새에 대한 궁금증을 해명하려면 제작기술에 대한 추적이 필요하겠고 결국 토기의 여러 물리화학적 성질에 대한 과학분석에 주목하게 되었다. 예를들면 토기의 흡수율이 얼마인가를 분석하여 흡수율이 예상했던 것 보다 낮다면 액체를 저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정에 반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경남 욕지군의 상노 대도 조개더미(貝塚)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들의 흡수율을 실제로 계측하였다(신숙정, 1984). 토기들 가운데에는 흡수율이 20%를 넘는 것들도 있으나 5-7% 정도의 낮은 것들도 많았다. 이들은 물그릇 또는 액체저장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토기의 주 원료를 동정(同定 : identification)하는 방법으로 편광현미경(polarizing-microscope)을 사용한 광물분석법이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주 재료는 찰흙과 “비짐”이다.이 무렵의 기술로는 찰흙만으로 그릇을 잘 구워내기 어려웠으므로 여기에 비짐이라고 불리우는 물질을 다량으로 넣게되는데, 이들은 찰흙을 만질 때 적당한 점성을 유지하도록 하며 말릴때나 구울 때 터짐을 막기도 한다. 비짐물질을 확인하려면 토기의 박편(thin section)을 만들어 현미경상으로 광물분석을 하는 것이다. 비짐에는 석영, 장석, 운모가 주로 쓰였으며 활석이나 석면 등도 확인되었다(신숙정, 1983). 비짐의 존재는 그릇의 쓰임새와 관계깊다. 즉 다공질의 토기들에 음식물을 넣고 가열하거나 오랜 기간 액체를 저장한다면 풀려나오는 흙의 입자를 어떻게 처리했을 것인가 하는, 오랫동안 궁금하게 여겨져온 부분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의 흡수율을 낮추기위해 여러 가지 비짐을 넣었는데, 위에서 필자가 확인한 흡수율 5%의 토기는 바로 조개껍질을 사용한 토기였다. 중미지방 인디언들은 토기에 석회석을 넣어 액체 저장용 그릇을 만드는데(Plog, 1980), 석회석은 조개껍질과 똑같이 구성성분은 탄산칼슘(CaCO3)이다. 이들은 석회질의 물질(calcareous material) 로서 그 자체가 일종의 융제(flux) 역할을 해서 소성 온도를 낮춰주고, 바탕흙 사이의 기공을 메꿔주어 치밀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토기의 흡수율이 높은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예도 있다. 고온건조한 지역에 사는 인디언의 경우 흡수성이 높은 토기를 일부러 물그릇으로 사용한다(Plog, 1980). 토기 바깥 부분에 계속 물방울이 맺히고 증발하면서 이것이 기화열을 뺏아가 그릇 안의 물은 찬 상태를 유지하게 때문이다. 토기의 실용성에 대해 민족지 자료는 역시 매우 유용한 해답을 제시하는데, 예를들면 녹말성분이 든 액체를 토기에 넣어 한번 끓여내면 이들이 토기 기벽의 내부에 스며들어 단단해지며 더 이상 흡수율의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밖에도 흡수율이 높든 얕든 토기를 만든등을 덧칠하거나, 조약돌 등으로 반질반질하게 갈아주는 등 뒷손질(finishing treatment)을 해서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어떤 다공질의 토기도 액체를 담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Vitelli, 1987 : 22). 최근 토기의 쓰임새를 확인하려는 실험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토기는고구마 찌기 등 탄수화물의 가공에 매우 적합함이 드러났다(2005년 KBS HD 역사 스페셜 신석기 편 참조). 토기에 홍합 등을 넣어 조개탕을 끓이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또 토기에 묻은 검댕이 자주 관찰되는데 이들은 토기벽에 눌어붙은 음식물 찌꺼기임도 밝혀지고 있다. 액체저장과 화식기의 기능은 이미 검증된 상황에서, 토기에 음식물을 넣어 발효시키는 즉 장류나 젓갈류를 담아두는 용기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겠다. 발효란 오랜 기간의 저장을 필요로 하며 대부분 염류가 첨가된다는 점에서 토기가 와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짓기 어려우나, 대체로 기록상 장류가 나타나는 시기(즉 역사시대)의 토기들은 뚜껑덮인 환원 가마에서 고온으로 구워져 매우 단단하며 쇳소리가 난다는 점에서 장류 등의 발효식품 만들기와저장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문제는 토기들이 과연 몇도 정도에서 구워졌나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 토기가 구워진 온도는 당시의 기술수준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는 주제가 된다.토기로부터 점차 돌처럼 단단해서 쇳소리가 나는(stoneware) 신라토기를 거쳐 고려청자 및 조선의 분청과 백자 단계로 들어감에 따라 이들을 구운 온도는 시기별로 뚜렷이 달라진다. 즉 토기제작 기술의 발달은 그 소성온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필자는 약 20여회 이상의 토기분석 작업을 통해(최몽룡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를 구운 온도는 대략 550-700도 사이이다. 두 토기는 구운 온도에서 차이가 나기 보다는 가마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이는 빗살무늬토기가 한데가마(露天窯)에서 구워졌다고 여겨지는데 반해 무문토기부터 공기의 흐름을 일정하게 하는 “가마구조”가 출현한 것 같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빗살무늬토기의 색깔은 얼룩덜룩 검으스레하며 불균질하여 산화가 잘 안된 상태를 보여주나 무문토기는 발색이 균일하고 매우 고운 오렌지 빛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철기시대의 경질무문토기는 석영의 고온물질인 tridymite가 나타나 900도 정도에서 구워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삼국시대의 토기들은 mullite, cristobalaite 등 석영의 고온형이 찾아져 대략 1000도 이상에서 구워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조선시대의 토기는 1100-1200도 정도에서 구워진 것으로 나타난다(이상 최몽룡 ,신숙정, 1998). 이를보면 빗살무늬토기로부터 시대의 발전에 따라 소성온도를 대략 100도 정도씩 올려간 것으로 볼수 있다. 결국 초벌구이물질(유약을 바르지않은)로서 토기의 소성온도는 1100도 까지 정도이며, 1200도가 최대의 고온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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