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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유적) 경기 광명지역의 청동기 유적 By 관리자 / 2018-07-04 PM 08:43 / 조회 : 896회

(콩 유적) 경기 광명지역의 청동기 유적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실질적인 연구는 1960년대에 이후부터 진행되었다. 북한에서는 1962년 함북 장덕리와 웅기 굴포리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남북한 각지에서 유적이 발굴되면서부터 구석기 문화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남한지역에서는 충남 공주군 석장리 유적지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찍게, 주먹도끼, 긁개, 새기게 등으로 후기 구석기새대의 유물에 속한다. 1973녕에는 제주도 빌레못 동굴서 큰곰, 적록, 노루의 호서뼈와 함께 인공석편, 골재, 밀게, 숯따위가 발견되어 중기 구석기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충북제천에서는 골기, 석기와 함께 사향노루, 호랑이, 동굴곰등 휴적세의 동물화석뼈가 채집되었다.

1976-80년에 걸쳐 발굴 조사된 충북 청원군 코뿔소, 하이에나등을 포함한 32종의 동물 화석과 골기가 채집되었는데 중국의 주구점과 같은 중기 홍적세 간빙기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는 방대한 규모의 구석기 문화층으로 주먹도끼, 찍게, 긁게 등 많은 유적이 발굴 조사되어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손도끼등은 전통의 구석기 문화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구석기 문화 유적은 풍부한 편이며, 전기구석기문화-심곡, 전곡두루몽, 상원, 중기구석기-역포, 후기구석기-석장리, 굴포리, 승리산의 존재가 모두 확인되었으며 이들의 연대는 40-50만년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한강하류지역의 경기도 화성군, 양주군, 등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어 이 일대가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였음이 확인되었다. 구석기인들의 주거지는 형태상 한대유적과 동굴유적으로 구분한다. 한대유적은 주로 물이 있는 곳에 위치하며 방향은 남향과 동향이고 집의 규모나 성격상 주로 살림터와 일시적인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위한 집터로 구분한다.

이런 형태의 유적지는 종선동관진, 웅기 굴포리, 공주 석장리, 연천 전곡리, 단양 수양게 등이 있다. 동굴유적의 경우는 대게 석회암지대에 분포되어 있다. 공주 마암리동굴, 사원 검은모루동굴, 덕천 승리산, 제주 빌레못동굴 청원 두루봉동굴 등이다. 구석기 새대 사람들의 생활은 전기에는 주로 채집단계였으나 후기에는 채집과 사냥을 하였다. 가족구성원은 5-8면 정도로 공동생활을 하였다.

광명지역의 구석기시대 유적지는 지금까지 학계에 조사, 연구된내용이 없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러나 광명시를 둘러싸고 있는 안양천과 목감천 유역의 고고학적인 조사가 실시된다면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확인될 가능성이 높을수 있다고 생각된다.

  

 기원 1만년전 흉적세가 끝나고 충적세 초기인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기후는 점차 따뜻해졌다. 이 과정에서 기원전 6,000년전 무렵부터는 현재와 같은 동식물의 생태계로 변하였으며 한반도의 자연환경도 비슷하게 변화 하였다. 본장에서는 지금까지 발견된 신석기새대 유적지는 140곳에 이르므로 광명시 부근인 한강 하류지역의 유적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한강하류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의 유적은 1925년에 발견된 암사동 유적이며 암사동 주거지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시대 연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암사동 유적지는 3개의 문화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위층부터 백제문화층,청동기 무문토기 문화층, 신석기 문화층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총 26기의 수혈주거지가 발 굴, 조사되었는데, 형태는 V자형 또는 U자형의 첨저와 토노리형의 원저가 특징적이다.

암사동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석기는 석부, 타제, 연석, 어망추등이 함께 출토되었다. 석부는 적당한 크기의 자갈동을 다듬어 연마한 것이 많으며 타제석기는 몽고,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전파된 석기문화로 시베리아 신석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어망추도 원형, 또는 타원형의 자갈돌로 양옆에 흠을 낸 것이 보통의 형식이다.

암사동 유적에서 이러한 어망추가 다량으로 출토되는 것을 보면 빗살무늬토기인의 생활이 주로 어로에 의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1960녕에 발굴, 조사된 미사리 신석기 유적은 암사동유적과 함께 한강 하류지역의 가장 중요한 선사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미사리 유적은 암사동유적과 거의 동일하므로 이 두 유적이 동시에 존재했던 신석기 문화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지역구분을 토기형태로 나누면 동북지방군, 서북지방군, 남부지방군, 중서지방군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암사동, 미사리유적은 중서지방군에 속한다. 또 한강유적의 신석기 문 화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할 때 두 유적은 전기에 속한다. 암사동, 미사리 빗살무늬토기인의 중요한 경제활동은 어로였다. 이러한 사실은 주거지가 강변에 위치한다거나 또는 어망추 그물바늘의 출토 로 짐작할 수 잇다. 신석기 시대의 신앙은 자연숭배사상이 기본이었다. 자연숭배사상은 당시의 생산활동을 좌우하는 자연에 대한 경우에 서 나온 것으로 산, 강, 하늘, 자연물 등 일체를 숭배하는 사상이었다.

이상과 같은 신석기 사회는 인구의 증가, 생산력의 발전으로 계층분화와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 씨족사회가 붕괴되었다. 혈연에서 지연공동체로 변화되면서 권력의 집중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진전과정에서 기원전 10세기 무렵에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신석기 사회는 점차 붕괴되었다.

광명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아직까지 조사된바가 없어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광명의 지세나 자연환경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시대의 유적지가 확인될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시작은 보편적으로 B.C. 10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청동기문화는 북방계통이며 아연이 합금되어 있다. 이는 구리, 주석, 납이 포함된 중국계통과는 다른점이다. 이러한 북방계의 청동기문화는 점차 독자적인 단계로 발전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특유의 용범, 청동검, 청동추가 나타나게 되었다. 한강 유역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로는 전기 무문토기에 속하는 서울의 가락동 유적이 가장 이른 시기이며, 이 외에도 많은 무문토기 유적지가 한강 하류지역에서 남한강 상류 지역까지 발견, 조사 되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공렬토기가 출토되는 중기 무문토기 유적과 흑도가 출토되는 후기무문토기 유적들이다. 공렬토기가 출토되는 주거지 유적은 거의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대게는 야산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이 주거지들은 50-70cm 정도 깊이로 땅을 파고 만든 방향, 장방형의 움집이 대부분이다. 방바닥에는 진흙을 깔고 다진것도 있고 칸막이를 하여 여러개의 방을 만든것도 있다. 화덕자리는 대체로 벽에 치우쳐 있으나 화덕자리가 없는 것도 많이있다. 청동기 시대의 농기구는 거이 석기와 목기였다. 석기로는 석부, 석촉, 석검, 반월형석도, 연석 등이 출토되고 있다. 반월형석도는 곡식의 이삭을 따는 농경석기로서 반달모양이며 두 개의 구멍을 뚫어 끈을 끼워서 쓰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청동기인은 농경이 주 생업이었다. 석부는 흙을 뒤집은 경작 도구 였고 끌은 목제 농구를 제작하는 농기구였으리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도구들이 거의 모든 주거지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모두 농경을 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여주 혼암리 주거지에서는 쌀, 조, 기장, 콩, 옥수수등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청동기인들의 공통된 작물이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중 쌀은 중국 양자강 유역에서 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산동반도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청동기 시대는 청동기의 전래로 생산활동을 증대시켜 생산력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사회도 크게 진보하였다. 생산력의 확대는 씨족 내부의 빈부의 차이가 조장되어 혈연 중심의 씨족사회가 붕괴되었으며 계급사회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계급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석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지상에 책상처럼 세워진 북방식, 큰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남방식의 두가지로 나뉜다. 북방식 지석묘는 대동강, 임진강, 북한강등 큰 강의 상류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남방식 지석묘의 전형적인 형태는 지하에 석관등 매장 시설을 만들고 주변에 돌을 깐다음 흙을 덮고 때때로 지상에 10톤이 넘는 개석을 몇개의 작은 받침돌로 고여 놓은 것이다. 개석식은 석관의 뚜껑이 지상에 노출된 것, 또는 지하 석관의 개석과는 별도로 그 위 지상에 큰 판석을 받침돌 없이 놓은 것으로 석상분이 지상화, 북방식화하는 중간단계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한강유역의 지석묘는 강화도 부근리, 김포평야, 서울 근교와 화천, 평창, 단양, 정선에 이르기까지 분포되어 있으며 지속묘에서 석검, 석촉, 무문토기 등이 출토되고 있다. 광명지역에서는 2곳에 지석묘가 발견, 조사되어 보존되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58호인 가학동지석묘는 광명시 가학동 102-1 104번지대에 위치하며 터골산과 북쪽에 위치한 나즈막한 야산을 연결하는 구릉의 정상부에 있다.

조사지역의 서쪽으로 현재의 벌말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지석묘들은 장축방향을 동서방향으로 하여 2열로 만들어져 있다. 최근에 한양대학의 조사팀이 96년 11월 -12월사이에 1차 조사외 97년 4월 17일부터 5월 30일까지 2차 발굴조사를 통해 제출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이 지역의 지석묘는 경기도 기념물 58호로 지정된 탁자식 지석묘 1기를 포함해 그전까지는 총 6기로 보고 되었으나 노출된 상석을 조사한 결과 상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모두 11기로 나타났으며 상성의 크기는 2m 내외, 두께는 30cm이며 장타원형의 석재와 한쪽면만을 치석한 삼각형의 석재 두 종류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지석묘는 당초의 예상보다 만을 것으로 판단 되고있다.

21페이지 광명시 가학동 지석묘 조사지역 평면도

1 호 지석묘 (사진1)

조사지역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며, 경사진 구릉부의 중간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느티나무 묘목 밭이 조성되어 있고 노리실로 이어지는 소로변에 있다. 상석의 규모는 7*105*38cm이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상석의 장축부분은 잘 치석되어 있으며 동서방면으로 놓여 있다. 상석이동 후 하부 매장 시설은 없었으며 지표층 아래로 암반층이 노출되어 있다.

2 호 지석묘 (사진2)

1호 지석묘와 나란히 위치한 지석묘로 1호 지석묘에서 남쪽으로 6m의 거리에 있다. 상석의 크기는 167*100*29cm이며 원형의 평면형태를 하고 있따. 상석의 장축은 동서 방향이며 잘 치석되어 있다. 상석 이동후 조사된 하부매장시설은 없었고 1호 지석묘와 같이 지표층 아래 풍화암반 층이 노출되었으며 주변에서 약간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3 호, 4호 석재 (사진 3, 4)

3호 석재는 2기 지석묘에서 3m의 거리에 있으며 4호 석재와 나란히 있다. 3호 석재의 크기는 70*83*30cm이며, 평면형태는 삼각형이다. 장축위 방향은 동서이다. 4호 석재는 3호 석재의 남쪽에 있으며 크기는 194*100*29cm이다. 평면형태는 삼각형 장축은 동서이다. 3,4호 석재 사이에 하부 매장시설의 일부였을 판석 3매가 노출되었다.판석은 동서방향으로 놓여진 다른 상석과는 달리 남북방향으로 놓여 있었으며 주변 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었다. 3,4호 석재들은 조사결과 상석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6호 지석묘와 관련된 지석일 가능 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며,이는 두석재의 형태가 한쪽면만을 치석하여 상석을 받치기 좋은 두 석재 사이에 하부매장시설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는 판석이 발견된 점, 두 석 재 사이의 밀접한 점 등에 의해 3호, 4호 석재는 지석으로 판단되어 지고 있다. 3,4호 석재는 상석으로 판단되어 호수를 부여 했으나 조사결과 지석으로 추정됨으로 지석묘 대신 석재라고 표기 하였다.

24페이지 사진 1호지석묘 측면, 2호 지석묘 측면

5 호 지석묘 (사진 5)

1호에서 남쪽으로 10m 가량 떠어져 있으며 상석의 크기는 170*83*30cm로 평면 형태는 삼각형이다. 장축의 방향은 동서이며 삼각형 형태의 긴면만이 치석되어 있다. 5호부근에서 반원형 할석열이 노출되었다. 할석의 크기는 10cm 내외 였으며 특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무문토기 동체파편이 수습되었다.

6 호 지석묘

3호에서 서쪽으로 3m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상석의 크기는 197*148*28cm이며 방형에 가까운 원형의 평면형태를 하고 있다. 상석은 잘 치석되 있었고 상석 아래로 평편한 판석매가 받쳐져 있었으나 이미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상석 이동후 주변에서 5호 지석묘와 같이 성격을 알 수 없는 할석열이 확인 되었으며 할석열의 아래층은 풍화 암반층이 형성 되어있다.

7 호 지석묘

5호에서 서북쪽으로 11m정도 거리에 있으며, 상석의 크기는 150*120*28cm이다. 상석의 방향은 동서방향이며 원형에 가까운 평면형태를 하고 있다. 상석은 3면만이 잘 치석되어 있었으며 상석 이동후 조사된 하부매장시설은 없다. 현 지표층 아래로 바로 풍화 암반층이 노출된다.

8 호 지석묘

동에서 남쪽으로 6m의 거리를 두고 위치하며 상석의 평면형태는 원형이다. 상석의 장축방향은 동서이며 크기는 285*120*55cm로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지석묘를 제외하면 가장 큰 상석이다.8호 지석이 2매 남아 있는 탁자식 지석묘로 판단 되며 남쪽의 지석은 민묘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실 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작은 무문토기 동체 부편이 수습되었다.

페이지 25 3호지석묘 측면, 4호 지석묘 측면

페이지 26 5호지석묘 측면, 12호 지석묘 측면

9 호 지석묘

경기도 기념물 58호 지석묘에서 5m 정도 떨어져 있다. 9호는 상석이 파괴되고 지석 2매 가 남은 파괴지석묘로 밝혀졌다. 지석의 크기는 128*88*46cm, 75*115*14cm였으며 2매 모두 장방형의 평면형태를 가지고 있다.매장시설은 노출되지 않았다.

10 호 지석묘

9호 지석묘의 남쪽으로 3m 정도 거리에 있으며 상석이 4부분으로깨져 있다. 깨어진 상석 에는 잘라내기 위해 쐐기 자국이 있으며 주변으로 깨어진 할석편들이 남아있다. 상석이동후 주사된 하부매장시설은 없다.

11 호 지석묘

조사지역의 토층확인중에 노출되었다. 지표상에 노출되지 않아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상석의 크기는 140*95*26이다. 평면형태는 원형이고 장축방향은 동서 방향이다. 상석이동후 상석하부에서 할석열이 조사되었으며 할석열의 북쪽에서 반월형 석도가 한점 출토 되었다.

12 호 지석묘 (사진 6)

경기도 기념물 제 58호로 지정되어 있는 탁자식 지석묘이다. 가학동 지석묘중 가장 큰 상석을 가지고 있으며 지석의 일부가 무너져 기울어져 있다.

출토유물

마제석촉, 마제석검편, 반월형석도, 공렬토기 구연부편, 무문토기 동체부편, 무문토기 저부편 등이 발굴되었다. 한양대 발굴조사단에 의하면 가학동 지속묘 주변에 주거지가 광범위하였음을 밝히고 있으며 급속한 개발로 인해 대부분의 선사시대 유적이 사라진 서울 근교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로 지속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 지역 일대의 청동기 시대 문화를 밝힐수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철산동 지석묘

철산동지석묘의 크기는 292*185*88cm이며 화강암 계통의 암질로 되어 있고 형태는 탁자 형이다. 이 지석묘는 처음 철산동 462-33번지에 있었으나 도시 개발사업으로 1985년 1월 한양대 유적 발굴단에 의뢰하여 광명고등학교 이전을 위한 과정에서 상석은 치석한 흔적이 많고 하부구조는 석실을 구성하는 4개의 판석중에서 동,서쪽의 판성은 없어진 상태였고 남,북쪽의 판석은 석실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리고 석실주변에는 토기편과 철편등이 출토되었다. 철산동 지석묘는 광명고등학교의 교실 증축으로 이해 현재의위치인 시민회관 옆으로 이전 보전 되고 있다.


[출처] [콩 유적] 경기 광명지역의 청동기 유적|작성자 에멀젼

  관련사이트 : http://blog.naver.com/emulsions/2001431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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